일본서기 경행천황기 오구나타케루의 쿠마소 웅습 정벌
일본서기 경행천황기 오구나타케루의 쿠마소 웅습 정벌
(내가 ai로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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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무존(日本武尊)이 웅습을 토벌함
날짜
(경행 27년) 97년 12월
연계
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연계자료
12월 웅습국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는 사정과 지형을 살폈다. 그때 웅습에 우두머리가 있었다. 이름은 취석록문(取石鹿文;토로시카야)주 001 또는 천상효수(川上梟帥;카하카미타케루)라 하였다. 그는 일족을 모두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려 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무존이 머리를 풀어 소녀처럼 꾸미고 몰래 천상효수의 연회에 가서 때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칼을 옷 속에 차고 천상효수가 연회하는 방에 들어가 여인들 중에 있었다. 천상효수가 소녀의 용모를 칭찬하고 손을 잡고 한 자리에 앉아 잔을 들고 술을 먹이고 희롱하였다. 이윽고 밤이 깊고 사람도 드물게 되었다. 천상효수는 술에 취해 있었다. 이에 일본무존은 옷 속의 칼을 빼어 천상효수의 가슴을 찔렀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때 천상효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에 일본무존이 칼을 거두고 기다렸다. 천상효수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대족언천황 주 002의 아들이다. 이름은 일본동남주 003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천상효수가 또 “나는 나라 가운데 강력한 자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의 위력에 눌리어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는 많은 용감한 자를 만나보았으나 아직 황자와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한 놈의 천한 입 입니다만 존호를 올리려고 하오니 허락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그러마.”라고 답하였다. 또 “금후 황자의 호를 일본무황자(日本武皇子)라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말이 끝나자 가슴을 찔러 죽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일본무존이라고 높여 부르는 연유이다. 그런 연후에 제언 등을 보내어 그 도당들을 모두 베었다. 남은 자가 없었다. 연후에 해로로 왜에 돌아와서 길비(吉備;키비)에 가서 혈해(穴海;아나노우미)주 004를 건너 그곳의 나쁜 신을 죽였다. 또 난파(難波;나니하)로 돌아올 때에 백제(柏濟;카시하노와타리)[濟는 와타리(和多利)라고 읽는다.]의 나쁜 신을 죽였다.
번역주 001)
12년 12월조에 비슷한 설화가 보이는데, 厚鹿文과 迮鹿文으로 나온다. 『古事記』에는 熊曾建 형제라고 한다.바로가기
번역주 002)
景行天皇이다.바로가기
번역주 003)
일본무존의 별명으로 2년 3월조에 보인다.바로가기
번역주 004)
예부터 瀬戸内海 항로의 요충으로 지금의 山口縣 下關市로 보는 설과 吉備의 穴지역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취석록문, 일본무존, 일본무존, 일본무존, 대족언천황, 일본무존, 제언
지명
길비, 혈해, 난파, 백제
일본무존(日本武尊)이 웅습을 토벌함
날짜
(경행 27년) 97년 12월
연계
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연계자료
十二月, 到於熊襲國. 因以伺其消息及地形之嶮易. 時熊襲有魁帥者. 名取石鹿文, 亦曰川上梟帥. 悉集親族而欲宴. 於是日本武尊解髮作董女姿, 以密伺川上梟帥之宴時. 仍佩劍裀裏, 入於川上梟帥之宴室, 居女人之中. 川上梟帥感其童女之容姿, 則携手同席, 擧坏令飮而戲弄. 于時也更深人闌. 川上梟帥且被酒. 於是日本武尊抽裀中之劍, 刺川上梟帥之胸. 未及之死, 川上梟帥叩頭曰, 且待之. 吾有所言. 時日本武尊, 留劍待之. 川上梟帥啓之曰, 汝尊誰人也. 對曰, 吾是大足彦天皇之子也. 名曰日本童男也. 川上梟帥亦啓之曰, 吾是國中之强力者也. 是以當時諸人, 不勝我之威力, 而無不從者. 吾多遇武力矣, 未有若皇子者. 是以, 賤賊陋口以奉尊號. 若聽乎. 曰, 聽之. 卽啓曰, 自今以後號皇子應稱日本武皇子. 言訖乃通胸而殺之. 故至于今, 稱曰日本武尊, 是其緣也. 然後遣弟彦等, 悉斬其黨類, 無餘噍. 旣而從海路還倭, 到吉備以渡穴海. 其處有惡神. 則殺之. 亦比至難波, 殺柏濟之惡神[濟, 此云和多利.].
색인어
이름
取石鹿文, 日本武尊, 日本武尊, 日本武尊, 大足彦天皇, 日本童男, 日本武尊, 弟彦
지명
吉備, 穴海, 難波, 柏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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