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경행천황기 - 여구(=오구나)의 탄생

일본서기 경행천황기 - 여구(=오구나)의 탄생







경행천황(景行天皇) 2년 원문 국역

3월 원문 국역


도일대랑희(稻日大郞姬)를 황후로 삼음 72년 3월 3일 원문 국역


도일대랑희(稻日大郞姬)를 황후로 삼음


날짜

(경행 2년) 72년 3월 3일


연계

와세다대학 전자도서관연계자료


2년 봄 3월 병인삭 무진(3일)에 파마(播磨;하리마)의 도일대랑희(稻日大郞姬;이나비노오호이라츠메)주 001[어떤 책(一)에서는 도일치랑희(稻日稚郞姬;이나비노와키이라츠메)주 002라 하였다. 낭희주 003는 이라츠메(異羅菟咩)라고 읽는다.]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는 두 아들을 낳았다. 첫째는 대대황자(大碓皇子;오호우스노미코)주 004이고 둘째는 소대존(小碓尊;오우스노미코토)주 005이라 한다[어떤 책(一書)에서는 황후가 세 아들주 006을 낳았다고 하였다. 그 셋째를 치왜근자황자(稚倭根子皇子;와카야마토네코노미코)주 007라고 하였다.]. 대대황자와 소대존은 한 날 한 배주 008의 쌍둥이로 태어났다. 천황이 이를 이상히 여겨 절구(臼)에게 훈계하였다주 009. 이런 연유로 두 왕을 대대, 소대로 불렀다. 소대존은 또 일본동남(日本童男;야마토 오구나)주 010[童男은 오구나(鳥具奈)라고 읽는다.] 또는 일본무존(日本武尊;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주 011이라 하였다. 어려서도 웅략의 기상이 있었다. 성인이 되자 용모가 크고 훌륭하였다. 신장이 1장이고 힘이 능히 솥을 들 수 있었다주 012.


번역주 001)


『古事記』에서는 吉備臣 등의 선조인 若建吉備津日子의 딸인 針間之伊那毗能大郞女라고 적고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02)


『古事記』에서는 伊那毗能若郞女라고 하고, 伊那毗能大郞女의 동생으로 眞若王과 日子人之大兄王의 어머니라고 적고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03)


郎姬는 여자의 호칭이다. ‘郞媛’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日本書紀』에는 낭희는 6명, 낭원은 1명의 예가 있다. 『古事記』에서는 ‘郎女’로 표기하기도 한다.바로가기


번역주 004)


景行紀 이후는 천황 자녀의 호칭을 ‘命’에서 ‘황자·황녀’를 사용한다.바로가기


번역주 005)


尊은 계승 후보자에게 부여하는 존칭이다.바로가기


번역주 006)


『古事記』에서는 五柱라고 적고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07)


『古事記』에서는 倭根子命으로 4남이라 적고 있다. 4년 2월조에는 八坂入媛의 4남이라고 적고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08)


同胞. 胞는 태아를 감싸고 있는 막을 말한다.바로가기


번역주 009)


일본에는 절구를 출산과 연관 짓는 풍습이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10)


『古事記』에서는 倭男具那命이라고 적고 있다. 미혼의 남자란 의미이다. 27년 12월조에 ‘나는 大足彦天皇의 아들로 이름은 日本童男이라 한다.’는 문구가 있다.바로가기


번역주 011)


『고사기古事記』에서는 왜건명倭建命이라 적고 있다. 용감무쌍한 사람이란 뜻이다. 

27년 12월조에 

웅습熊襲(=쿠마소)의 괴수魁帥 천상효수川上梟帥가 ‘일본무황자日本武皇子’란 

존호를 받들었다고 한다.바로가기


번역주 012)


힘이 세다는 의미로 40년 7월조에도 보인다.바로가기


원문 : 

二年 春三月丙寅朔戊辰, 立播磨 稻日大郞姬[一云, 稻日稚郞姬. 郞姬, 此云異羅菟咩]. 爲皇后. 后生二男. 第一曰大碓皇子. 第二曰小碓尊[一書云, 皇后生三男. 第三曰稚倭根子皇子.]. 其大碓皇子·小碓尊, 一日同胞而雙주 001生. 天皇異之, 則誥於碓. 故因號其二王曰大碓·小碓也. 是小碓尊, 亦名日本童男[童男, 此云鳥具奈.]. 亦曰日本武尊. 幼有雄略之氣, 及壯容貌魁偉, 身長一丈力能扛鼎焉.


교감주 001)

소학관본에서는 ‘双’이라고 적고 있다.


//일본어 번역

[ [

“통치 2년째 해 봄 3월 병인삭 무진(3일)에 파마(播磨;하리마)의 도일대랑희(稻日大郞姬;이나비노오호이라츠메)[어떤 책(一)에서는 도일치랑희(稻日稚郞姬;이나비노와키이라츠메)라 하였다. 낭희는 이라츠메(異羅菟咩)라고 읽는다.]를 세워 

황후로 삼았다. 황후는 두 아들을 낳았다. 

첫째는 대대황자(大碓皇子;오호우스노미코)이고 

둘째는 소대존(小碓尊;오우스노미코토)이라 한다[어떤 책(一書)에서는 황후가 

세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다. 

그 셋째를 치왜근자황자(稚倭根子皇子;와카야마토네코노미코)라고 하였다.]. 

대대황자와 소대존은 한 날 한 배의 쌍둥이로 태어났다. 

천황이 이를 이상히 여겨 절구(臼)에게 훈계하였다.

이런 연유로 두 왕을 대대, 소대로 불렀다. 


소대존은 또 일본동남(日本童男;야마토 오구나)[童男은 ‘오구나(鳥具奈)’라고 읽는다.] 

또는 일본무존(日本武尊;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이라 하였다. 

어려서도 웅략의 기상이 있었다. 

성인이 되자 용모가 크고 훌륭하였다. 

신장이 1장이고 힘이 능히 솥을 들 수 있었다.


二年 春三月丙寅朔戊辰, 立播磨 稻日大郞姬[一云, 稻日稚郞姬. 郞姬, 此云異羅菟咩]. 爲皇后. 后生二男. 第一曰大碓皇子. 第二曰小碓尊[一書云, 皇后生三男. 第三曰稚倭根子皇子.]. 其大碓皇子·小碓尊, 一日同胞而雙주 001生. 天皇異之, 則誥於碓. 故因號其二王曰大碓·小碓也. 是小碓尊, 亦名日本童男[童男, 此云鳥具奈.]. 亦曰日本武尊. 幼有雄略之氣, 及壯容貌魁偉, 身長一丈力能扛鼎焉.” ]_일본서기 경행천황(景行天皇)  본기 오구나타케루의 탄생


] //일본어로 번역해줘 


二年目の春、三月の丙寅朔戊辰(3日)に播磨の稲日大郞姫(いなひのおほいらつめ)[一説には稲日稚郞姫(いなひのわきいらつめ)とも。郞姫はいらつめと読む]を立てて皇后にした。皇后は二男を産んだ。

長男は大碓皇子(おおうすのみこ)、次男は小碓尊(おうすのみこと)と言う[ある書には、皇后が三男を産んだとも。その三男を稚倭根子皇子(わかやまとねこのみこ)と言った]。大碓皇子と小碓尊は同日に生まれた双子であった。

天皇はこれを不思議に思い、碓に訓戒を与えた。このため、この二王を大碓、小碓と呼んだ。


小碓尊はまた、日本童男(やまとのおぐな)[童男は「おぐな」と読む]、または日本武尊(やまとたけるのみこと)とも言われた。幼い頃から雄略の気質があった。成人すると、容貌が堂々として大きく、身長は一丈あり、力は鼎を持ち上げることができた。

 _日本書紀 景行天皇本紀 大日本童男(オグナタケル)の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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